[69프로젝트] 석류

김수정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01 08:20 수정 2020.07.01 08:50



사무실 앞마당에 말라비틀어진 석류나무 한그루가 칼바람을 맞고 있다. 모가지가 꺾인 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석류는 새까만 조개탄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제법 실한 붉은 생명을 잉태해 알알이 달콤한 씨앗을 순산하더니 작년 가을 생각도 못 한 불난리를 맞고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도심에 있던 사무실은 아침부터 밤까지 주차 전쟁으로 얼굴 붉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때로는 입속에 칼을 꺼내 서로에게 생채기를 주는 일이 허다했다. 좋았던 사이가 철천지원수로 변하고 상처 입은 말들은 음산한 유령처럼 떠돌았다. 이렇게 지내다간 우울한 일상이 삶을 송두리째 흔들 것 같아 과감히 정리하고 도시 변두리에 새로운 둥지를 만들었다. 교통은 좀 불편해도 마음이 편하니 한결 하루가 가볍고 머리도 상쾌했다.


넓은 마당이 한눈에 보이는 기와집의 풍경은 빛바랜 수채화에서 보던 아스라한 그리움이 흠씬 묻어나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흙담을 두른 기와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석류나무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파릇파릇한 잎을 틔우고 순환의 광합성으로 푸르름을 더했다. 삼신할머니의 자식 점지는 매번 훌륭해 가을이면 가지마다 다산의 기쁨들이 주렁주렁 흥겨웠다. 풍요의 햇살을 받고 알알이 반짝이는 벌어진 껍질 속의 석류씨앗은 어떤 보석보다 영롱하고 향기로웠다. 어린 이율곡이 석류 껍질 속에 새빨간 구슬이 부서져 있다고 시를 지었던 심성에 맞장구를 치기 충분했다.


아침이면 사무실에 나와 창문 너머로 석류나무를 보며 혼자 마시는 커피 한잔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늦가을 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붉은 석류가 탐스러웠던 날로 기억난다. 늦은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눅눅한 방의 습기를 말리려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었다. 다급한 연락을 받고 경황없이 도착해보니 말로만 듣던 아비규환 지옥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는 날름거리는 혀로 집을 삼키고도 허기가 지는지 마당의 모든 나무며 풀까지 싹쓸이했다. 순간 현기증이 소름과 함께 풀어헤친 머리를 지나 짝짝이로 신고 온 신발로 툭 떨어졌다. 그 후부터는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였다. 불 회오리에 휩싸인 석류나무에서 시뻘건 아가리를 벌린 석류가 한꺼번에 불꽃놀이를 했다. 타닥타닥. 씨앗들이 터지면서 팝콘처럼 날아올랐다. 마당을 가로 질러 손등으로 불을 품은 석류 씨가 쏟아져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귓가에서 멀어지는 소방관의 다급한 외침과 소낙비로 얼굴에 떨어지는 차가운 물줄기와 목을 조여 오는 매캐한 연기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엄마의 가슴은 쪼그라든 살이 모여 울퉁불퉁했다. 화상으로 인한 상흔은 대중목욕탕을 가지 못했고 여름에도 얇은 옷을 입지 못했다. 마흔에 얻은 늦둥이 막내딸이 기름에 튀긴 누룽지가 먹고 싶다 생떼를 쓰지 않았다면, 펄펄 끓는 냄비 옆에서 빨리 달라 재촉을 안 했다면 쏟아진 기름을 온몸으로 덮어쓰지는 않았으리라. 어린 딸에게 행여 기름이 튈까 축구공을 막는 골키퍼처럼 기름 냄비를 막던 엄마는 기름 범벅이 되어도 한마디만 외쳤다.


아이고, 내 새끼. 괜찮나. 안 다칬나!”


새빨간 석류처럼 익어가던 당신의 몸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딸의 얼굴과 몸을 바쁘게 만지던 손은 이미 부풀대로 부푼 물집이 잡혔었다. 화상 치료는 더딘 시간과 싸움이었다. 땀구멍을 뚫고 나온 진물이 발악이라도 하는 날은 옷에 달라붙은 피부가 피를 토했다. 짠 내 가득한 더위가 세포에 앉으면 가려움이 수십만 개의 벌레가 되었다. 물집이 터진 자리마다 흉물스럽게 똬리를 트는 검붉은 흉터는 자식의 자람에 반비례로 점점 작아지고 아물어갔다.


얼매나 다행인가 몰러. 니가 다쳤으면 어쩔 뻔 했노!”


석류가 씨앗을 품듯 가슴에 나를 품은 엄마의 독백은 자신을 위로하는 메아리가 되어 한동안 내리사랑을 어루만졌다. 모든 걸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심장에 불씨로 남은 막내딸은 평생을 두고 제일 잘한 일로 늙은 어미의 기억을 붙잡고 있다. 아픈 눈물의 기억이다.


화마가 휩쓴 땅은 공포였다. 불길을 잡으려 집을 부수느라 마당에 들어온 굴착기가 움직인 자리마다 갈라지고 패이고 산산조각이 났다. 시커멓게 탄 석류나무에 재를 뒤집어쓴 석류는 어릴 적 보았던 엄마의 가슴처럼 쪼그라들어 보기 흉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어깨에 산더미 같은 짐을 올려놓고 걸어보라고 세상은 말하는데 자신감이 없는 나는 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멍한 눈으로 의미 없는 하루를 습관처럼 반복하며 사무실에 오가는 일이 전부였다. 아까운 시간만 바람 속을 흘렀다. 생각해보면 참 무의미한 일상이었다.


무기력에 빠져 그날도 마당을 할 일 없이 서성이다 무심코 발밑을 보았다. 회색 잿더미 사이로 돋아난 파릇한 싹은 분명 석류나무의 새순이었다. 심장에서 짜르르 전기가 일었다. 경이로운 생명의 씨앗이 전해 준 감동은 나를 다시 일으키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여리고 여린 싹은 죽음의 흙 속에서 삶을 지키고자 옹골찬 호흡을 했고 한 알의 석류씨앗은 희망이 되어 흙 위로 기지개를 켰다. 씨앗이 준 기적은 천 마디의 말보다 깊은 울림으로 가슴에 감동이 되었다.


라는 말에는 모든 것의 시작이란 뜻이 숨겨져 있다. ‘날씨는 날의 씨앗이기에 비가오거나 흐린다고 짜증을 내기 보다는 비가 오시네 날이 흐리네로 순리를 받아들이고, ‘솜씨는 재주의 씨앗이기에 주신 그대로 재능을 발휘하며 감사해야하고, ‘마음씨는 마음의 씨앗이기에 항상 따스하고 올바르게 가져야 하고, ‘성씨는 김 씨 이 씨 박 씨 등 근본의 씨앗이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쪼그리고 앉아 여린 초록 잎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바람이 등을 쓰다듬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연은 제 자리를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죽은 줄 알았던 석류나무는 신기하게도 작은 분신 몇 개를 잉태했다.


볼품없는 까만 껍질 속에 군데군데 이가 빠진 푸석한 석류였지만 고맙고 감사했다. 다가가 살며시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엄마가 나를 품에 안았던 그리움이 성큼 다가섰다. 잊었던 추억이 심장으로 또르르 굴러와 뭉클하고 시리다. 햇볕이 참 맑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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